커뮤

한밤의 박물관 데이트

청화 2022. 5. 7. 14:18

노을이 드리우는 시간, 박물관의 대문에는 [A rental]이라고 적힌 팻말이 달려있었다. 건물에 비친 노을빛이 주변 풍경과 묘하게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과 같이 보였다.

고개를 들면 입구에 솟아있는 오벨리스크와 그 뒤로 보이는 높은 건물들의 향연이 수많은 역사와 이야기, 예술들의 흔적들을 방문객들에게 알려주듯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었다.
MUSEI VATICANI. 영어로 하면 MUSEUM BATICAN으로 읽힐 건물의 정체를 말하는 글귀가 새겨진 돌로 된 아치형의 입구를 지나는 두 남녀가 손을 맞잡고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남성은 허리까지 드리우는 긴 흑색의 머리카락에, 초콜릿처럼 어두운 구릿빛의 피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유리구슬처럼 동공이 샛노란 푸른 눈이 별처럼 박혀있었다. 푸른빛의 정장위에 중세시대에서나 볼 법한 남색과 금빛으로 어우러진 긴 로브를 어깨에 둘러쓰고 있었으며, 남성의 피부와는 별개로 창백한 흰 피부와 백색 머리칼을 가진 여성의 투명한 백색 눈은 남성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고, 흰 색위주로 구성된 긴 드레스자락이 계단을 오를때마다 들려올려져 얇은 발목 아래의 투명한 은빛같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평범하다는 단어와는 딱 보아도 거리가 먼 옷들이 예사롭지 않은 사람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치형의 문 아래에서, 남자는 소매에서 사슴이 조각된 긴 나무막대를 꺼내어 자신의 머리를 톡 두드렸다. 마치 팔레트의 물감이 물로 씻겨져 내려가듯 검었던 머리카락은 순식간에 조금의 곱슬기가 진 시크릿 투톤의 금발과 청발로 어우러진 머리칼로 변했으며, 우리가 보기에 그의 왼쪽인 편의 눈의 막이 검은 빛으로 변하여, 한 쪽 눈은 평범한 청색 눈동자가 박힌 눈이지만 다른 한쪽은 검은 바탕에 청색 눈동자가 박힌 오드아이로 변했다.
대개 지나가다 흘끗거릴 모습이었으나 곁의 여성은 익숙하다는듯, 그저 무심하게 그 변하는 과정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느덧, 저녁 미사시간을 알리는 시스티나 성당의 종소리가 맑은 소리로 울려퍼졌다.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들고있던 나무 막대를 소매에 다시 집어넣었다. 여성에게 손 하나를 정중히 내밀어보이며 허리를 숙여보이고, 차갑게 굳어져있어 가면같던 얼굴에 웃는 입술을 덧그려내었다. 여성 앞에서만 보이는 그의 보조개가 보이는 특유의 미소는 차가워보이던 남녀의 분위기를 한껏 누그러뜨렸다.

"인자 갈까, 쥬피테."
"그래, 솔라."

그렇게 말하며 살포시 웃어보인 여성 쥬피테는, 남성 솔라의 손 위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두 사람 모두 영어를 사용했지만 솔라의 목소리는 낮고 느렸다. 표준어와 다른 독특한 말투는 스코틀랜드 특유의 말투였다. 반면 쥬피테의 목소리는 솔라처럼 느려 차분한 느낌을 주었으나, 솔라와는 다르게 높은 목소리였다. 런던말씨처럼 들리는 버밍엄 말씨였으나 외국에서 생활했거나 여행을 오래 다녀온 것처럼 다른 억양들도 간간히 들렸다.

두 사람은 커다란 박물관의 잠긴 문을 함께 밀어 열어젖혔다. 노을을 등지고 문을 연 둘의 눈앞에는 수많은 조각과 미술품, 천장화 등 오랜 시간을 거쳐 각자의 웅장한 자태를 보이는 광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두 사람은 느릿하게 구둣발 소리를 내며 조용한 박물관에 발을 들였다.
등 뒤에서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쿵, 하고 닫혔다.

어느새 쥬피테보다는 걸음을 늦춰 뒤에 들어온 솔라가 등 뒤로 손을 돌려 문을 닫은 것이었다.
솔라는 눈을 깜빡거리며, 문을 닫은 자신을 응시하는 쥬피테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꺼내었다.

"...마음에 들길 바래야긋네."
"...솔라, 마음에 들어, 충분히. 예술품들이 가득하잖아...네가 사랑하는 도서관도 근처에 있고."
"맞나? 마음에 든다카믄, 다행이고."

솔라는 쥬피테가 좋아하지 않을까 고민하며 초조했었다는 듯이, 앞머리를 뒤로 쓸어넘겨보였다. 그들은 다시금 손을 맞잡고 관람코스를 따라 관람하기 시작했다.

손님은 오늘 저녁 이곳을 대여한 둘 뿐이었다. 조도가 평소보다 낮추어진 박물관 안에 구둣발 소리가 각자의 발걸음과 무게에 맞추어 느릿하게 울려퍼졌다.

둘은 거대한 대리석 조각 앞에 섰다.
바티칸, 그중에서도 성 베드로 성당의 명물로 불리는 조각상.
한 여성이 성인남성을 본인의 무릎위, 품에 안으며 내려다보는 모습.
차가운 조각상을 응시하던 솔라는 앞에 놓인 전시푯말을 확인했다.

<Pietà, Mickellanzelo>

이게 그 유명하다고 다들 떠들던 피에타구나. 그리고 제 곁의 여성의 성이기도 한 이름. 하고 생각하던 솔라는 무심코 옆의 쥬피테를 확인하듯 시선을 돌렸다가, 그 순간 특유의 맑은 눈으로 상을 올려다보다 자신을 응시하던 쥬피테와 시선이 마주쳤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순간, 그 순간만큼은 두 사람도 이 박물관의 조각상이 된 것처럼 고요했다. 조금 정적이 흐른 후, 쥬피테가 느릿하게 붉은 입술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말을 꺼내었다.

"솔라, 집중해야지. 이곳까지 왔잖아?"

"...그렇네, 미안하데이."

"나한테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솔라."

쥬피테는 일부러인지 아닌지 애매한 여지를 주며 솔라의 상체에 등을 기대었다. 동시에 턱을 들어 그의 얼굴을 직시하며 말했다.

"...그래서, 어때? 솔라, 이 예술품들 말이야. 솔라는 어때? 마음에 들어?"

"...난 예술품은 잘 모른다니께, 몇 번이고 말했지마는."

"자세히 알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가 중요해... 내게는 말이야, 솔라, 너의 생각을 그냥 말해줘."

"...음."

끝없는 쥬피테의 종용에 솔라는 항복을 선언하듯 가볍게 숨을 내쉬고 피에타상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눈을 깜빡이면서 자연스럽게 쥬피테의 허리를 감싸안고 잠시간 쳐다보던 솔라가 말했다.

"나는...마음에 드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디. 그렇지만 대리석이라서 근가, 내는 좀 차가워보이기도 한다..싶은 생각도 든다. 이걸 보니께, 네 성이 와 피에타인지도 알것 같고. 저거, 저 대리석의 여자가 성모 마리아던가, 그 사람이제? 품에 안은게 예수고."

조용히 말을 듣던 쥬피테는 질문을 하듯 던지는 솔라의 말에 맞아. 라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 행동에 자신감을 얻은듯 솔라는 다시금 말을 열었다.

"사실 내는 성경도 기냥, 재밌는 책이다 생각하고 읽었거든. 근데... 이거 보니께, 뭔가 좀 형언할수 없는 기분이다. 뭐라 캐야겠노, 이거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내 눈엔 기냥 대리석상이고, 의미도 잘은 모르겠지마는 어쨌든 간에 굉장히 아름다운 예술품이다...그래야 되긋네. 그리고 뭔가 의미도 풍부할것 같고."

솔라의 눈이 호선을 휘며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대형견이 애교를 부리는 것과 닮았다 생각한 피에타는 피식, 웃는 듯한 숨을 뱉으며 자신을 껴안은 솔라의 팔을 쓸어내렸다.

"네 말이 맞아, 솔라. 이 상은 의미가 있어. 특히 머글들에게는 말이야... 마법사들은 종교가 없지만 머글들은 대개 하나씩 갖고 있잖아? 아니면 무신론자거나. 이건 기독교를 섬기는 머글들에게는 소중한 의미기도 해. 성경을 읽어봤다고 했지..."

느릿한 어조로 예수, 성모 마리아에 대해 조근조근 이야기하며 이 상은 이런 의미가 있다고 설명하는 쥬피테에 솔라는 과거의 어느 날을 떠올렸다. 자신에게 푸른색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설명해줄때에 기쁨에 가득찬 눈으로, 자신에게 열정적으로 그 색의 의미를 설명하던 쥬피테를. 지금 그녀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덕에 보이는 얼굴은 마치 그날과 겹쳐져보였다. 그리운 추억을 회상하던 솔라를 일깨운것은 이번에도 그녀의 목소리였다.

"...그런 의미야. 솔라, 잘 들었어?"

"응, 물론이제. 쥬피테가 말하는 거라면 무엇이든 주의깊게 듣제."

"아닌 것 같은데...아, 솔라. 지금 생각났는데 네가 좋아할 만한 작품이 하나 있는 것 같아."

조심스럽게 자신을 품은 팔을 풀어낸 쥬피테가 휙, 하고 몸을 돌리며 솔라의 한 쪽 손을 붙잡고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것은 아주 커다란 그림이었는데, 본인들이 아까 지나온 입구처럼 둥근 아치형의 건물 입구 안으로 들어오며 무언가를 열띄게 토론하는듯한 두 사람, 그리고 두 사람의 주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각기 앉아있거나 서 있는 그림이었다. 쥬피테가 찬찬히 입을 열었다.

"이건 라파엘로라고 하는 미술가가 그린 <아테네 학당>이야. 솔라는 지식을 사랑하니까... 이런 작품이 마음에 들 듯해."

"맞나. 확실히 마음에 드는 그림 제목이네. 학당이라... 학교 느낌이기도 하고. 우리 기숙사 사람들 같아뵈기도 하고. 그립네."

"여기서 호그와트를 떠올릴 거리가 있을진 몰랐어...아무튼,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머글들에게 유명한 학자들이야. 예를 들면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유클리드...그런 사람들이지. 꽤 유명하니까 나중에 한번 그들의 작품도 찾아보는게 좋을거같아. 솔라는 지식을 사랑하잖아?"

예쁘게 눈웃음을 지어보이며 입꼬리까지 끌어올리는 쥬피테의 얼굴을 응시하던 솔라는 못 이기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이곤, 그러께. 하면서 다시금 슬쩍 손을 맞잡길 시도했다. 쥬피테 역시 피하지 않고 손을 맞잡았다.
둘은 다시금 거대하던 그림에서 눈을 돌리고 발을 돌려 다른 작품들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앞과 주변에 수많은 예술들이 지나갔고, 급할 것은 없었기에 둘은 잠시 탐험하는 듯한 기분을 멈추고 박물관 안의 피냐정원으로 이동했다. 잔디 위에 털썩 앉은 두 사람이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자 날이 좋은 것인지, 어둑해진 밤하늘위로 수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쥬피테는 그 광경을 응시하며 자신 곁의 솔라에게 다시 머리를 기대었다. 솔라 역시 익숙하게 쥬피테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받치며 함께 바라보았다.

솔라는 그 순간, 자신의 소매에 숨겼던 지팡이를 꺼내어 단어를 발음하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Orchideous."

순식간에 지팡이 끝에서 화려한 붉은 장미들이 튀어나왔다. 쥬피테는 그 광경에 놀라지도 않고 그저 아름다운 장미들이야. 하며 반응했다. 솔라는 말없이 웃음을 지으며 장미들을 묶어 쥬피테에게 내밀었다.

"마음에 들까... 장미는 너에게 어울린다꼬, 그래 생각하거든. 빨간 장미는 사랑을 뜻하기도 한다...아이가? 내가 로맨틱한 인간이 아니라가꼬 다른 꽃들은 잘 모르긋지만, 어쨌든 꽃이랑 잘 어울리거든, 니."

"그래? ...솔직히 말하면 내게 이런걸 주는 건 아직도 조금 이상해. 그렇지만 고마워, 솔라. 집에 돌아가게 되면 그때 꽃병에 장식해둘게. 영원히 마르지 않도록."

그 말에 솔라의 입꼬리는 보조개가 파이도록 하늘 높이 솟았다. 사르르, 하는 효과음이 들리는듯이 긴 속눈썹을 접은 솔라는 하늘의 별들과 달을 등지며 쥬피테에게 시선을 고정해보였다.
그런 시선을 받은 쥬피테 역시 못 말리겠다는듯한 얼굴로 웃음을 띄우며 솔라를 향해 두 팔을 뻗어보였다.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은 지금이 무언가를 시도해도 괜찮을 타이밍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솔라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쥬피테에게 고해성사를 하듯 낮게 속삭였다.

"...내가 지금 니헌테 키스를 해도 되긋나?"

"...솔라, 내가 예전부터 말했잖아? 다 괜찮다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서로의 목을 끌어안아 서로에게 당기며 입을 맞추었다.
그 모습을 하늘의 달빛이 황금빛 비를 뿌리듯 두 사람을 비추었다.
지금의 두사람은 예술가가 섬세하게 다듬어 만든 완벽한 연인의 조각상과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정말로, 한 여름밤의 꿈처럼 완벽한 밤 데이트였다.

'커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교 오스다니 글  (0) 2022.05.02
Play the game  (0) 2021.11.01
에스티안 비프  (0) 2021.09.05
에스티안/래번클로/순수혈통  (0) 2021.09.03